<격려사 요약>
"우리는 온돌민족, 온돌 라키비움이 절실하다"
송기호 (전 서울대학교 박물관장)
1. 온돌 연구의 시작
발해사 전공자로서 만주·연해주의 발해 온돌 유적을 접하면서 온돌 연구에 입문하였다. 온돌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문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건축사학계와 고고학계에서도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하였다. 이에 역사학자로서 수백 권의 발굴 보고서를 직접 분석하여 구들의 평면 형태와 고래수를 핵심 분류 요소로 설정하고, 한반도식 온구들과 만주·연해주의 쪽구들을 아울러 '온돌'로 정의하는 개념 체계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2006년 『한국 고대의 온돌』, 2019년 『한국 온돌의 역사』로 결실을 맺었다.
2. 온돌의 역사적 전개
온돌은 기원전 북옥저에서 발생하여 고구려, 경남 사천 늑도 일대로 전파되었으며, 한반도 북부에서는 고구려·발해를 거쳐 여진족의 캉(炕)으로 이어졌다. 한반도 남부에서는 삼국시대 경기·강원 영서 지방을 중심으로 확산되다가 고려시대에 현재와 같은 온구들 구조로 발전하였다. 특히 온돌은 가난한 민중에서 출발하여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왕실까지 수용된 아래로부터 위로 확산된 문화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이력을 지닌다.
3. 온돌이 한국 문화에 미친 영향
온돌의 보급은 한국인의 생활양식 전반을 변화시켰다. 구들의 하중 부담으로 단층집 문화가 정착되었고, 따뜻한 바닥 생활로 인해 입식 문화가 좌식 문화로 전환되었다. 좌식 생활은 체형과 농기구(호미·낫의 짧은 자루)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1960년대 아파트 보급 이후에는 온수 순환식 난방으로 진화하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찜질방·전기장판·지하철 온열 좌석 등은 모두 온돌 문화의 파생물로 볼 수 있다.
4. 온돌의 세계화와 라키비움의 필요성
온돌식 바닥 난방은 상하이·런던 등 해외에도 확산되고 있으나, 한국에서 관련 특허를 내지 않아 서양 기업들이 그 유래도 모른 채 시공하는 현실이다. 이대로라면 온돌이 한국 고유의 문화·산업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국적을 잃게 될 위험이 있다. 국가무형유산 등록에 그치지 않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자료 축적과 홍보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현재 온돌을 체계적으로 알리는 전문 공간이 전국 어디에도 없는 실정에서, 자료 축적·전시·체험·기술 전수를 통합한 평창 온돌라키비움의 건립은 이러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절실한 과제이다. 아울러 온돌 세부 용어의 표준화 등 학문적 기반 구축도 라키비움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임을 강조하였다.
5. 평창과의 인연
2016년 평창캠퍼스 방문 중 황토 구들 마을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평창 온돌과의 첫 인연이었으며, 이후 임정훈 센터장과의 교류를 통해 이번 포럼에 참여하게 되었다. 평창이 K-온돌을 세계에 알리는 구심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격려사를 마무리한다.
🔶송기호 교수님의 격려사 전문 파일을 첨부하였습니다.


<격려사 요약>
"우리는 온돌민족, 온돌 라키비움이 절실하다"
송기호 (전 서울대학교 박물관장)
1. 온돌 연구의 시작
발해사 전공자로서 만주·연해주의 발해 온돌 유적을 접하면서 온돌 연구에 입문하였다. 온돌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문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건축사학계와 고고학계에서도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하였다. 이에 역사학자로서 수백 권의 발굴 보고서를 직접 분석하여 구들의 평면 형태와 고래수를 핵심 분류 요소로 설정하고, 한반도식 온구들과 만주·연해주의 쪽구들을 아울러 '온돌'로 정의하는 개념 체계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2006년 『한국 고대의 온돌』, 2019년 『한국 온돌의 역사』로 결실을 맺었다.
2. 온돌의 역사적 전개
온돌은 기원전 북옥저에서 발생하여 고구려, 경남 사천 늑도 일대로 전파되었으며, 한반도 북부에서는 고구려·발해를 거쳐 여진족의 캉(炕)으로 이어졌다. 한반도 남부에서는 삼국시대 경기·강원 영서 지방을 중심으로 확산되다가 고려시대에 현재와 같은 온구들 구조로 발전하였다. 특히 온돌은 가난한 민중에서 출발하여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왕실까지 수용된 아래로부터 위로 확산된 문화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이력을 지닌다.
3. 온돌이 한국 문화에 미친 영향
온돌의 보급은 한국인의 생활양식 전반을 변화시켰다. 구들의 하중 부담으로 단층집 문화가 정착되었고, 따뜻한 바닥 생활로 인해 입식 문화가 좌식 문화로 전환되었다. 좌식 생활은 체형과 농기구(호미·낫의 짧은 자루)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1960년대 아파트 보급 이후에는 온수 순환식 난방으로 진화하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찜질방·전기장판·지하철 온열 좌석 등은 모두 온돌 문화의 파생물로 볼 수 있다.
4. 온돌의 세계화와 라키비움의 필요성
온돌식 바닥 난방은 상하이·런던 등 해외에도 확산되고 있으나, 한국에서 관련 특허를 내지 않아 서양 기업들이 그 유래도 모른 채 시공하는 현실이다. 이대로라면 온돌이 한국 고유의 문화·산업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국적을 잃게 될 위험이 있다. 국가무형유산 등록에 그치지 않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자료 축적과 홍보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현재 온돌을 체계적으로 알리는 전문 공간이 전국 어디에도 없는 실정에서, 자료 축적·전시·체험·기술 전수를 통합한 평창 온돌라키비움의 건립은 이러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절실한 과제이다. 아울러 온돌 세부 용어의 표준화 등 학문적 기반 구축도 라키비움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임을 강조하였다.
5. 평창과의 인연
2016년 평창캠퍼스 방문 중 황토 구들 마을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평창 온돌과의 첫 인연이었으며, 이후 임정훈 센터장과의 교류를 통해 이번 포럼에 참여하게 되었다. 평창이 K-온돌을 세계에 알리는 구심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격려사를 마무리한다.
🔶송기호 교수님의 격려사 전문 파일을 첨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