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봉사-]전통 흙건축 되살려 11년째 지역봉사-문체부 정책주간지 K-공감 2012.10.22일자 보도

이소유
2024-12-29

붉은 황토흙에 마른 짚을 썰어넣어 단단하게 다져 지은 황토벽. 그것이 우리 전통의 흙건축이었다. 흙건축은 오늘날 자연주의, 친환경, 건강 같은 단어들과 맥락을 같이한다. 흙건축은 고도의 기술과 장비가 필요한 ‘하이테크 공법’에서부터 간단한 도구만으로 가능한 ‘로테크 공법’까지 다양하지만, 인력과 시간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전남 무안군에 위치한 목포대 건축학과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흙건축 전공과정이 개설돼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흙 건축가’ 황혜주(47) 교수가 목포대 건축학과에 있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돌이나 나무가 없는 곳은 있어도 흙이 없는 곳은 없다. 흙건축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가능한 건축”이라고 소개했다.

어디에서나 지을 수 있는 흙집의 특성을 이용해 황 교수와 목포대 건축학과 제자들은 2002년부터 인근 지역 취약계층 주택을 대상으로 흙집을 지어주고 흙미장 등 보수공사를 해주는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 황 교수가 대표가 되어 2006년 사단법인 한국흙건축연구회가 설립되고 나서는 연구회 회원, 자원봉사자들이 합세했다. 지금까지 아동센터, 노인센터, 조손가정 등 24곳에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흙집이라고 해서 전체를 흙으로 짓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흙미장 만으로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웬만한 농가주택의 경우 한나절이면 흙미장 작업이 끝나는데, 흙의 습도 조절 능력과 탈취 능력, 항균 효과가 살아 있어 곰팡이가 피지 않고 담배를 피워도 실내에 냄새가 잘 배지 않는다고 한다. 흙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도 크다.

지난해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소개된 민혁이네가 대표적 사례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에 위치한 민혁이네는 할머니 박순단(54)씨와 손자 민혁(11)이만 사는 조손가정. 수해로 집이 붕괴위험에 처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지역 복지재단에서 방송국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3천만원을 모금하고 흙건축연구회에서 설계와 시공을 맡았다.

벽에 금이 가고 지붕이 떨어져 나간 농가주택을 허물고 15평 규모에 방 두 개, 주방과 화장실, 태양열 난방 기능을 갖춘 흙집을 지었다. 건설 기간을 너무 길게 잡을 수 없어 목조로 뼈대를 세웠지만, 흙미장으로 마감해 흙의 기능을 살렸다. 조립식 주택공법을 적용해 짓는 비슷한 규모의 농가주택 건설비도 3천만원 정도다.

민혁이네는 여름에는 바깥보다 최대 7~8℃ 정도 낮아 시원하고, 겨울철에는 흙벽이 낮에 태양의 온기를 저장했다가 저녁에 다시 방출하기 때문에 보일러를 꺼도 한동안 따뜻하다고 한다.

또한 흙은 발열효과가 높아 콘크리트에 비해 적은 열량으로도 더 많은 열을 낸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5월 전남 함평군 학교면 지역아동센터에 시공한 ‘흙침대’다.

 이곳에서는 콘크리트 바닥을 뜯고 단열재를 깐 뒤 전기로 가열되는 열선을 설치하고 흙으로 덮었다. 온돌처럼 은은하게 흙바닥으로 퍼지는 온기가 난방을 끄고도 한동안 지속되어 아이들이 겨울철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흙건축은 건축과정도 친환경적이다. 콘크리트 1톤을 만드는 데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는 약 9백킬로그램. 황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국에서 좋은 흙을 쉽게 구할 수 있어 흙건축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친환경적이면서도 건축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게 흙건축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자기 힘닿는 만큼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흙건축 봉사의 또 다른 매력이다. 흙건축 봉사에 참가했던 문정현(25·목포대 건축학과)양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손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끈끈한 결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원래 집은 전문가가 와서 지어주고 집주인이 돈을 내고 사는 게 아니었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짓고 그 안에 들어가 사는 식이었다. 스스로 지은 집에 사는 사람이 누렸을 정신적인 안락감은 오늘날 주택과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1990년대 말 선풍적 인기를 끈 모 건설사의 ‘황토방 아파트’를 계획한 주인공이다. 당시만 해도 흙건축은커녕 친환경 건축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한 시기였다.

황 교수가 흙건축 연구를 결심한 것은 결혼 후 첫 아이를 얻은 1995년부터.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던 황 교수는 아이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됐고, 그간 연구가 가장 미흡했던 흙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지도교수였던 서울대 건축학과 김문한 교수는 “흙건축을 하면 밥굶기 십상”이라며 말렸지만, 18년 동안 우직하게 흙건축 연구에 몰두한 결과 황 교수는 우리나라 흙건축의 권위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황 교수는 흙건축 봉사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흙건축을 알리는 동시에 젊은 건축학도들이 경쟁에만 치닫는 세태를 좇기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도전하는 인재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지방대 학생들은 대개 빨리 서울로 진출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선택은 학생의 몫이지요. 그러나 획일화된 건축보다는 지역 맥락을 이해하는 건축을 해야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는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흙건축연구회는 매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흙건축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최근 참가자들이 늘어 올해 이미 두 차례 워크숍을 마쳤고, 10~11월 중 한 차례 더 계획하고 있다.

글·남창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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